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교/비판과 반론 (문단 편집) === 반론 === 동아시아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은 막상 가장 유학적인 국가였던 [[송나라]]와 성리학을 국학으로 채택한 승유억불의 [[조선]]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었다. [[북송]]과 [[남송]]의 기술 발전과 경제적 발전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며, 한반도의 경우만 보아도 유교적인 색채가 가장 강했던 조선시대에 [[측우기]], [[자격루]], [[혼천의]], [[앙부일구]], [[거북선]], [[화차(무기)|화차]]와 [[신기전]] 등등 전대인 고려시대와 [[통일신라]] 시대 때보다 한층 더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한민족]]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한글]] 창제와 같은 언어학의 발전과 [[동의보감]] 같은 의학 발전 또한 함께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도 제작 기술 또한 계속 발전하여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같은 당대 최고 수준의 세계 지도나 [[대동여지도]] 같은 훨씬 더 정확한 지도들이 제작되었으며, [[천문학]] 또한 발전해 [[칠정산]] 같은 우리나라 최초의 역법이 만들어졌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전천(全天) 천문도이자 세계 최초의 고경도 석판 위에 새겨진 전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또한 제작되었으며, [[선조(조선)|선조]]대에는 인류 역사에 남은 [[우리 은하]] 마지막 초신성인 SN 1604(케플러의 초신성)을 관측해 실록에 기록했는데, 이는 현대에 와서 이 [[초신성]]이 la형 초신성이었음을 알아내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일 정도로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연산군]] 대에는 은광석에서 순수한 은을 추출하는 첨단 회취법인 [[연은분리법]]이 개발되는 등 여러 분야에서 계속 발전이 이루어졌다. 서양과 비교하여 유교가 과학 발전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이 많다고 평가 하기도 하는데, 애초에 이는 '''서양의 과학문명이 특이하고 독보적인 경우'''이지 유교가 딱히 다른 사상들과 비교했을 때 유독 과학 발전에 크게 장애가 되는 요소들이 많은것은 아니다. 유교 문화권 뿐만 아니라 [[이슬람]] 문화권이나 [[힌두교]] 문화권, [[불교]] 문화권 등등 유럽 문명을 제외한 대다수 문화권에서 자체적인 서양식 과학발전과 산업화에 모두 실패했음은 해당 문제가 유교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유럽 문화권만의 특이한 사례'''라고 평가하는 것이 객관적이다. 즉 '''유교가 과학발전에 크게 저해된다는 위와 같은 평가는 따지고 보면 오직 [[유럽]] 문명권과 비교할 때만 나올 수 있는 평가'''이며[* 실제로 서양이 아닌 이슬람, 불교, 힌두교 같은 비 서양 문명권들의 다른 사상들과 비교해서 유교가 유독 과학 발전에 더 불리하다고 평가하는 경우나,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남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같이 유럽 외의 지역들과 비교해서 한반도의 과학발전이 더 늦었다고 평가하는 경우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근대 기준으로 보면 '''유교는 유럽 문명권을 제외한 다른 문명권들의 과학 발전사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앞서는 수준이었을 뿐이었다.''' 이는 한반도가 만약 유교 문화권이 아닌 이슬람, 불교, 힌두 문화권이었다고 가정하면 그러한 경우에도 과연 유럽만큼의 과학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하는 간단한 질문만 해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러 사상들 중 유교만 유독 과학발전에 저해되는 사상이라는 편견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유럽화된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기에 '''오직 유럽의 기준만으로 다른 문화권들과 사상들을 재단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서양식 사고관념에만 갇힌 채로 유교를 재단하고 평가하면서 여러 편견들과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유교 문화권인 일본이 동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빨리 과학 기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도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의 과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그런 것이지, 만약 끝까지 쇄국을 고집했다면 지금처럼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실 서양식 사고관념에 갇힌 채 재단하고 평가해서 편견과 오류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서구 사상사에 대해 학부 수준의 지식이라도 있다면 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양식 사고관념이 기반이라면 그렇게 평가할 수 없는 일이다. 서양식 사고관념에 제대로 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가장 말이 안 되는 것은 논리학의 부재에 대한 비판에서 과학까지 이어지는 비판을 하면서, 또 사회 분위기 등등의 정신적 태도가 문제인 것마냥 말을 한다는 것이다. 과학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논리학이 발전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과학이 발전할 수 있겠냐,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동양을 비판한 다음 인간의 욕망을 부정하고 과거지향적인 복고주의적인 성향이기에 과학이 발전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이상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논리학에 대한 이해도 별로 없다. 논리학이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천재의 창작물에 가까우며, 이슬람권 역시 논리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에 속한다. 인도 철학 역시 동양철학보다 논리학적인 풍모가 매우 짙은 것은 사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무에서 논리학을 창조한 것은 아니라 그리스 철학의 전통에서 논리학을 창안한 것이지만, 동양 역시 따지자면 인도 철학인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논리학이 나올 만한 기반은 어느 정도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인도건 동양이건 논리학이 창안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천재의 등장을 논리학의 기반으로 돌려야지, 결코 유교의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몇몇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던 것처럼 중국어와 서구어의 언어적 차이가 문제라는 쪽에 더 설득력이 있다. 하위헌스, 뉴턴 등의 학자들도 위키 수준에서 제대로 싣지 않아서 그렇지 관념적인 연구 역시 상당히 많이 수행한 인물들이다. 이황, 이이 등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저런 연구를 많이 했다. 옛 철학자들은 상당히 다방면의 연구를 수행했다. 깊게 알지 못한 피상적인 수준의 비판인 것이다. 또한 서양은 귀족 등 상류층이 자신들의 사치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적극 지원했다지만, 정작 그 서양에서도 이를 안 좋게 보는 시선은 있었다. 대표적으로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경우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할 정도로 화학에 크나큰 업적을 남겼지만, 그는 [[세리]]로서 시민들의 세금을 착취하여 [[다이아몬드]]를 태우는 등의 실험을 했는데 이는 당시 시민들의 눈에는 사치로 보였고 결국 [[프랑스 혁명]] 이후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게 된다. 이런 식의 과학기술 연구와 발전이 마냥 옳고 좋은 것일까? 위 문단에서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 그러한 고통이나 희생을 감내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논리로도 갈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